9세에 중조 국경을 헤엄친 탈북 소년, 인연 없는 부산에서 'K-뷰티의 카리스마'가 되기까지(KOREA WAVE)

(원문 제목: 9歳で中朝国境を泳いだ脱北少年、縁のない釜山で“Kビューティーのカリスマ”になるまで [韓国記者コラム])

뉴스 시간: 2026년 6월 6일 07:54

언론사: KOREA WAVE

검색 키워드 : K-ビューティー

연관키워드:#탈북자 #NOIR #부산 #미용실 #K-Beauty

뉴스 요약

- 송강우 대표는 9세에 북한에서 탈출하여 부산에서 미용 사업을 성공시켰다

- 부산에서 미용실 6개와 미용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한다

- K-뷰티 기술을 동남아시아 시장에 온라인으로 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뉴스 번역 원문

9세에 중조 국경을 헤엄친 탈북 소년, 인연 없는 부산에서 'K-뷰티의 카리스마'가 되기까지

부산의 미용 관계자를 대상으로 강의하는 송강우 대표는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탈출한 주민으로, 한국에서 성공한 사례로는 서울에서의 '성공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미용 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NOIR'의 송강우 대표(34)는 성공을 위해 서울이 아닌 부산을 선택했다. 현재 부산에서 미용실 6곳, 미용 아카데미, 200평 규모의 교육장을 운영하며, 직원 198명을 이끌고 있다. 2026년 5월에는 광안대교가 보이는 곳에 새 매장을 열 예정이다.

NOIR 서면 본점에는 최근 중화권과 유럽, 미국에서 온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K-뷰티'를 체험하기 위해 부산을 찾는 외국인 고객이 한국인 고객보다 많아진 지 오래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은 4대 6 정도라고 한다.

2003년 북한 평안남도를 탈출한 송강우 씨는 당시 9세였다. 이웃 어른에게 "놀러 가자"는 말을 듣고 따라가 중조 국경 지역의 신의주까지 걸어간 후, 국경의 강인 압록강을 헤엄쳐 건넜다. 중국에서 6개월을 보낸 후,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것은 2005년이었다. 탈북의 여정만으로도 1년 이상 걸렸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송강우 씨를 도와준 것은 한국인 목사의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담긴 CD와 DVD를 처음 접했다. 처음 본 영화는 '브라더후드'였다.

서울에서는 위탁 가정에서 살았다. 낯선 가족 관계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에 다니며, 스스로 인터넷 카페에서 진로를 검색하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 문을 두드렸다.

진로를 고민할 때의 기준은 단순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체력적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직업 체험을 거쳐 미용을 선택했다. 명지전문대학 뷰티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건대 근처의 미용실에서 1년 이상 일했다. 이후 바다를 좋아해 인연도 없는 부산행을 선택했다.

부산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도 미용사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5세 아들이 있다.

부산에 정착한 후, 첫 창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중이었다. 서면·전포동에 가게를 열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통장에 남은 돈은 100만 원(약 11만 원)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내의 배 속에는 아이가 있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송강우 씨는 왜 실패했는지를 데이터로 분석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2~3년 비어 있던 건물의 주인을 직접 찾아가 "3~4개월 후에는 반드시 보증금을 지급하겠다. 임대료 면제로 시작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3년 전 서면에 연 가게가 NOIR 본점이다.

서면 본점에 외국인 고객이 방문하기 시작한 계기는 우연이었다. 한 외국인 고객에게 무료로 헤어 시술을 제공했더니, 그 고객이 중화권 플랫폼에 후기를 올리면서 관광객의 방문이 잇따르게 되었다.

후기는 빠르게 퍼졌다. 중화권 관광객이 급증해 최근에는 한 매장에 월 500명 정도가 방문한다고 한다. 이슬람권 관광객 유치에도 나서, 히잡을 착용하는 종교적 특성을 고려해 분리된 개인실도 마련했다. 서면 2곳, 광안리 2곳, 다대포, 사직, 개점 준비 중인 남포동까지 매장을 확장하고, 연산동의 교육장에서는 후배 미용사를 양성하고 있다.

중국, 태국, 베트남을 겨냥한 온라인 교육 사업도 병행하며, 2027년에는 현지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K-뷰티 기술을 동남아시아 시장에 온라인으로 수출할 구상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병행하는 송강우 씨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라서 정말 좋다. 내가 피와 땀을 흘린 만큼 얻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헬조선'이라는 인터넷 속어가 있다. 한국 사회를 '지옥처럼 절망적이다'라고 자조하며 비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젊은이들이 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송강우 씨는 "진짜 헬조선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북한에 한 번 보내줄까"라고 웃으며 넘긴다.

"북한에서는 가난한 집안에서 성공자가 태어나면, 틀림없이 제거된다." 송강우 씨는 이렇게 표현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한 사회에서 자란 그는 '노력의 보상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도 깊은 감동을 준다.

어머니와 8세 연하의 동생도 늦게 한국에 왔다. 고향으로 브로커를 직접 보내 데려왔다.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 사망 직후로, 국경 통과 비용이 두 배로 뛰었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현재 한국 강원도에서 농업을 하고 있으며, 동생은 신학대학원에서 목사 과정을 배우고 있다.

"내리막이 나타나면, 내려가는 법도 알아야 다시 추진력을 얻고 더 높이 뛸 수 있다. 사업을 하면서 이렇게 배웠다."

실패를 두 번 경험하고, 아직 34세다. 앞으로도 많은 내리막과 오르막이 나타날 것이지만, 그는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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