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박스 ‘카자’, 북미 K-뷰티 색조 경쟁(Venturesquare)

(원문 제목: “틱톡에서 뜨더니 올리브영까지”… 미미박스 ‘카자’, 북미 K-뷰티 색조 경쟁)

뉴스 시간: 2026년 5월 14일 08:06

언론사: Venturesquare

검색 키워드 : K-beauty

연관키워드:#K-beauty #미미박스 #카자 #색조화장품

뉴스 요약

- 미미박스의 색조 브랜드 ‘카자’가 틱톡에서 인기를 끌며 올리브영에도 입점

- 북미 시장에서 K-beauty 색조 제품의 경쟁력 강화

- 틱톡과 올리브영을 통한 마케팅 전략이 주효

뉴스 번역 원문

한국 전통은 종종 과거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한복, 공예품, 전통 문양은 아름답지만,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박물관이나 전시 공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위시 바이 하키의 김하경 대표는 이 간극을 메우고자 했다. 그녀의 목표는 한국의 선과 이야기를 현대 사람들이 실제로 들고 다니고, 사용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하는 것이었다. 위시 바이 하키는 이러한 비전에서 시작된 브랜드이다.

김 대표는 자신을 "우리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패션이 아니었다. MBA를 마친 후, 그는 약 5년 동안 국영 은행에서 근무하며 기업 연금 제도를 도입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금융 전문가였다. 어느 날, 숫자, 시스템, 논리가 중심이 된 세계에서 일하던 그는 완전히 다른 분야인 디자인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위시 바이 하키의 김하경 대표는 한국의 전통적인 선과 미학을 현대 패션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숫자에서 디자인으로, 이성에서 감성으로의 전환은 예상치 못한 휴식에서 시작되었다. 박사 유학을 준비하던 해에 미국 가방 브랜드를 수입하는 사업을 추진했지만 계약이 무산되었다. 대신 그를 움직인 것은 브랜드 뒤에 숨겨진 '이야기'였다.

김 대표는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은 30대 주부들이 만든 가방 브랜드가 미국 전역에서 사랑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왜 나는 할 수 없을까? 우리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가진 브랜드를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달력을 잘라 가방 패턴을 만들고, 인터넷에서 "가방 공장"을 맹목적으로 검색했다. 디자인부터 생산, 재료, 유통까지 모든 것을 단계별로 배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김 대표는 결론에 도달했다. 브랜드가 한국에서 시작되려면 궁극적으로 한국의 뿌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글과 동물 일러스트가 들어간 가방과 지갑을 만들었다. 2012년부터는 서울 예술의 전당과 인사 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통해 한국 전통을 현대 패션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브랜드의 방향은 더욱 명확해졌다. 단순히 "한국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학을 현대 생활에 가져오는 것이었다.

위시 바이 하키의 창살 및 조각보 시리즈는 전통적인 한국 요소를 현대 생활 디자인으로 해석한 대표적인 제품 라인이다.

전통을 벗겨내고 현대적인 선을 창조하다

위시 바이 하키의 슬로건은 '심플 & 오리엔탈 엘레강스'이다. 김 대표는 동양의 아름다움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데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많은 전통 요소를 포함한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적인 것은 아니며, 본질이 유지될 때만 현대적인 우아함이 창조된다고 설명한다.

디자인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도 명확하다. 이것이 단순한 전통의 재현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는가?

김 대표에게 전통은 유리벽 뒤에 보존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직접 들고, 사용하고, 경험할 때만 살아 숨 쉬는 문화에 가깝다.

위시 바이 하키의 시그니처 제품인 문창살과 조각보 시리즈도 이 철학에서 탄생했다. 단순히 전통 문양을 복제하는 대신, 선, 구조, 균형감만을 유지하여 현대적인 가방 디자인으로 재해석되었다.

실제 고객 반응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선다. 김 대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고객의 코멘트도 이 점을 언급한다. "1천만 원짜리 디자이너 가방이 과시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가방은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깊고 흥미로워서 좋다."

김 대표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에 담긴 가치와 정체성에 반응한다"며 "위시 바이 하키는 가격 경쟁보다는 이야기와 철학으로 기억되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위시 바이 하키의 김하경 대표는 "전통은 박물관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15년의 생존 후 남은 것은 '문화 IP'이다

위시 바이 하키는 2010년 김 대표의 자본으로 전적으로 시작되었다. 금융 부문에서 일하면서 유학을 위해 저축한 약 1억 5천만 원이 창업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누구보다 투자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초기 단계에서 외부 자금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장에서 브랜드 자체의 강점을 입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브랜드를 15년 동안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익을 낸 적도 있었고, 백화점 매장 확장으로 손실을 본 적도 있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유통 구조가 흔들리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10년 이상 사업을 운영한 브랜드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가 브랜드를 놓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단순히 사업을 접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록하려고 했던 한국 미학의 흐름을 끊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위시 바이 하키를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닌 '한국 문화 기반 IP 브랜드'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실제로 브랜드는 현재 가방을 넘어 액세서리, 섬유, 생활용품 등 라이프스타일 분야로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향후 5년 내에 위시 바이 하키를 한국적 세계관을 가진 글로벌 문화 IP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처럼, 위시 바이 하키의 창살과 조각보 패턴이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세련된 선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한때 숫자를 다루던 금융인이 이제 한국의 선과 이야기를 가방에 담고 있다. 달력을 잘라 패턴을 만들던 창업자는 15년 동안 브랜드를 유지해왔고, 그 시간 동안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닌 '한국의 아름다움을 현대 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법'을 점차 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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